책을 읽는 내내 문장이 술술 잘 읽혔다. 이 책을 덮으며 ‘앞으로는 꿈을 꾸면 이야기가 되든 안 되든 꼭 글로 적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꾼 꿈만 기록했어도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싶다. 평소 알쓸신잡을 즐겨봐서인지, 책을 읽을 때마다 문득문득 김영하 작가님의 목소리가 상상되기도 했다.

1. 읽는 순간 사로잡는 첫 문장
“인생은 일회용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인생이 일회용’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 간결한 문장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시간과 기회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마치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당연함에 갑자기 빛을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 한 줄이 너무 인상 깊어 첫 장과 두 번째 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무겁지 않게 던진 한 문장이지만, 그 여운은 깊고 길었다. 작가가 왜 첫 문장에 공을 들였는지, 왜 소설가들이 첫 문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한 번뿐인 삶을 나는 얼마나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혹시 무한히 반복될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라,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의 출발점이 되었다.

2. 시대와 환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틀
“누구도 시대의 한계, 환경의 한계를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내 아버지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내게 권했다.” — p.48
이 문장은 개인의 삶이 결코 개인만의 선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지금도 많은 부모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장 안정적이고 유망한 길이라 믿고 자녀에게 권한다. 하지만 그것은 부모가 의지적으로 특정 가치관을 주입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의 한계와 환경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대와 환경은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거나 방향을 틀어버린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내가 지금 옳다고 믿는 것’ 역시 시대적 산물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3. 도덕적 판단마저 좌우하는 ‘도덕적 운’
책에서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개념은 ‘도덕적 운’이다. 작가는 인간의 도덕성 역시 우연적인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 게 많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고귀한 행위를 하기가 쉽다.”
예컨대 1930년대 독일에 태어난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치의 악행을 방관하거나 가담할 가능성이 컸다. 이는 도덕이 개인의 내면만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이라는 통제할 수 없는 외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가 흔히 믿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의문을 던진다. 누군가의 도덕적 선택은 그가 어떤 시대에 태어났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 이는 도덕을 절대적인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균열을 낸다.

4. 개인적 감상 — ‘나’를 둘러싼 조건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스스로 옳다고 믿어온 가치관도 사실 시대와 환경의 산물이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님의 문장은 단순히 감성적인 위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번뿐인 삶’이라는 제한된 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환경’,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운’이 모두 영향을 준다.
이 세 가지가 모여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결정짓는다.